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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사즉생 박상관, 생즉사 심재철

  한국 뉴스를 보니 국회 본회의장에서 심재철 의원이 누드 사진을 보다가 망신을 당한 모양입니다. 그이도 남자고 예전에는 교실에서도 보곤 했는데, 국회 본회장에서 살짝 봤다고 그게 뭐 그렇게 문제가 될까 싶었습니다. "죄송하다" 하면 가벼운 해프닝으로 지나갈 것 같았던 그 문제에 대해, 당사자가 오히려 해명을 하고 반박까지 하니 부쩍 관심이 더 갑니다. 누드 사진을 본 것보다 해명과 반박이 더 무거워 보이고, 재미있습니다.


  그이의 반박은 역시 누드 사진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주 섹시하고 파격적입니다. 본회장에서 누드 사진을 검색하는 '예술가적 파격'을 선보였던 그이는 연이어 반박도 파격적으로 합니다. 규제를 위한 "실태 파악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 정도까지는 그렇다 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이 누드 사진을 보는 광경을 찍어 보도한 기사가)  "종북좌파에 대응하기 위한 좌파 언론의 정치 공세"라는 대목은 야한 누드 사진보다 더 눈길을 끌어당깁니다.


  과연 누드 사진과 종북 좌파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을까?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머리 좋은 그의 보좌관들이 이 연관성을 절대 놓칠 리가 없습니다. 연관성은? 둘 다 붉다는 겁니다. 예전 우리는 누드 사진집을 흔히 '빨간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른바 종북 좌파를 흔히 '빨갱이'라 부르니 누느 사진과 종북좌파는 '붉은 색'으로 통합니다. 아무도 생각 못하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발랄한 상상력과 탁월한 순발력에 박수를!



               심재철 의원의 누드 삼매경. 민중의소리 사진.


  나는 한국 대학농구의 팬입니다. 캐나다에 살면서도 NBA보다 한국 대학농구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이유를 꼽자면 여러 가지가 있으나 기회가 닿으면….

 

   최근 대학농구에서 사건 하나가 불거졌습니다.  심재철 누드 보기가 일종의 해프닝이라면, 경기 중에 발생한 농구 사건은 대학농구의 근간을 뒤흔들 만한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고대와 명지대 경기에서, 지고 있던 명지대의 주장이 고대 신입생에게 고의적인 파울을 했습니다. 그 파울은 명백하게 고의적이고 상대 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만한 악의적인 것이어서 해당 선수와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농구 관련 인터넷에서 넘쳐났습니다. 자칫하면 선수와 감독이 농구계 팬들에게 '매장'당할 수도 있고, 안 그래도 가뜩이나 먹구름인 농구 종목 자체가 팬들에게서 더 외면 당할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 폭행과 같은 파울을 한 자기 선수를 크게 꾸짖기는커녕, 파울 직후의 태도로 미루어 이를 조장, 방조한 듯 보이던 명지대 박상관 감독은 해당 선수보다 욕을 더 먹었습니다.


  심재철과 박상관. 두 사람이 연관된 사건의 공통점은 속된 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사안 자체를 놓고 보면, 누드사진이 고의적인 파울보다 훨씬 가벼워 보입니다.


  그런데 재미나는 것은, 사안이 가벼워 보이는 국회의원 누드사진 보기는 문제를 더 키우고 당사자의 쪽팔리는 망신 행진이 이어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무거워 보이던 농구 폭행 파울 사건은 전화위복이 되어 박 감독이 오히려 박수를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박상관 명지대 감독. 점프볼 사진.


  이렇게 사안이 확 뒤집힌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꼭 자기 식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심재철 의원은 전형적인 정치인답게 문제를 풀려고 했고, 박상관은 전형적인 스포츠맨답게 문제를 풀었습니다.


  정치인은 "실태 파악을 위한 것" "정치 공세"라고 변명, 반박하며 살려고 했고 스포츠맨은 "내 잘못이 크다. 정말 미안하게 됐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다짐했습니다. 정치인은 성명서를 냈고, 스포츠맨은 소박하게도 인터넷 사이트의 어느 글에 댓글을 다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박상관 감독은 간단하고 후련하게 문제를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살고자 했던 심재철은 살아나기는커녕 "치졸하다"는 평을 들으며 새로운 이미지를 하나 더 추가하셨고, 자기를 던져 죽고자 했던 박상관은 "감사하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대단하다. 아름답다"는 더 좋은 이미지로 살아납니다.


  이번 일을 비교하면서 여러 가지가 보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사즉생, 생즉사입니다. 자기를 미련없이 던지면 오히려 칭찬을 받게 되고 구구한 변명과 공세로 나오면 욕을 더 얻어드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정치보다 스포츠를 훨씬 더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