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이야기

김연아에 관해 이렇게 잘 쓴 글은 없다


    거의 매시간 다른 아이템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뉴스에 오르내리는 김연아 선수를 보면서, 엄청나게도 끌려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권력과 금력을 이용해 이리 저리 불러낸 뒤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추한 모습들이 매일 인터넷 뉴스란을 도배하다시피 했습니다.

   김연아는 지금 대학 1학년생입니다. 학기 중에 학교에 가야 할 학생이, 강의실에는 들어가지 않고 엄한 일에 끌려다니는 데 대해, 국내에 있으면서도 장기 결석을 하는 학생에게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는 고려대학교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무라지 않습니다. 김연아를 활용한 고대 광고에 대해서는, 인터넷 세상이 뒤집어지도록  비난과 욕설을 퍼부은 네티즌 가운데 그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김연아는 학기 중에 강의실에 들어가는 대신, 청와대로, 체육회로, 삼성 광고 이벤트장으로, 고향의 지역축전 거리로 이리 저리 불려다니며, '초치기'하는 연예인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연아를 이용해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들에 대한 비판 글이 올랐으니, 바로 다음 주소에 실린 것입니다.                   


경남도
  제 글의 제목을 보고 오해하신 분들이 많으셨을 겁니다. 제가 쓰는 글이 최고라는 게 아니라 위의 블로그에 오른 글이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지 않더라도 제목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빌리지 피플'인 김연아를 둘러싸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저 누추한 풍경들을 이렇게 정밀하고 정확하게 타격한 글은, 단언하건대, 대한민국에는 없습니다. 한국에 없으니,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학대 받는 김연아'

  제목에서 시적 느낌이 나지 않습니까?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저는 '되찾은 보물'이라는 제목으로, 20년 만에 인터넷에서 해후한 대학시절 가장 친한 벗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그 친구가 '학대 받는 김연아'를 쓴 김훤주 기자입니다.

  김훤주는, 대학 초년생 시절 습작을 하겠다고 까불고 다니던 제 앞에 완성된 시인으로 나타났었다고 지난번에 적은 바 있습니다. 

  저는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유명 시인과 한 직장에서 책상을 앞뒤에 두고 10년을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을 뚫어보는 시인의 직관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저같은 범인들이 주저 주저하는 사이에, 시인은 역겹고 더럽고 추한 세상을 단칼에 푹 찌르고 들어갑니다. 시인에게는 언어가 있습니다.

  시인의 생리와 직관과 감수성을 저는 잘 압니다. 시인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김연아라는 이름 앞에 '학대'라는 용어를 들이댈 수 있겠습니까? 

  1984년 가을, 강성욱 교수가 강의하는 <불시(佛詩)> 시간에, 학생운동하느라 여념이 없어 수업을 등한시한 김훤주가 어쩐 일로 들어왔습니다. 수업 출석 성적이 요즘의 김연아보다 조금밖에 낫지 않은 친구가, 불쑥 강의실로 들어와서는, 학생운동 대신 공부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결심'한 저의 골을 지르고 사라졌습니다.

  보들레르의 <독자에게(Au Lecteur)>라는 시로 한 학기를 강의하는 바로 첫 시간이었습니다. 강성욱 선생이 "자, 이제부터 이 시를 발표하는 학생에게 질문을 해보거라"라고 말했습니다.

  저같은 범인들은 무엇이 질문거리가 되는지, 질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때, 운동을 전공으로 삼으시느라 3학년 1학기 때부터 진짜 전공에는 김연아와 같은 체육특기생처럼 굴던 김훤주가 입을 열었습니다.

  "첫째 연에는 독자가 단수로 되어 있는데, 왜 둘째 연에서는 독자'들'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아, 저런 것도 질문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강성욱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좋은 질문이다. 발표하는 학생은 다음 시간까지 그 이유를 알아오너라."

 발표 학생은 "저 자석은 왜 들어와서 더러운 질문 하는 거야?"라는 듯이 울상을 지었습니다.

  김훤주는 질문 하나만 하고, 그 다음부터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 질문을 하러 들어왔는지, 질문을 하고 천하의 강성욱으로부터 칭찬 한 마디를 들으러 왔는지, 아직도 해명이 안되고 있습니다. 당시 학내에서 양심과 용기를 가진 자라면 모두가 참여하는 학생운동에서 등을 돌린 채 대학원에 가겠다며 폼을 잡던 저에게는 대단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훤주는, 시를 잘 쓰더니, 학생운동도 참 잘 하고, 보들레르 시에서 복수도 찾아내는구나!!!

  그리고는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이어, 이제는 지역신문 기자가 되어 이렇게 좋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소위 중앙의 한때 잘 나가던 시사잡지에서 오랫동안 문화부 기자로 일했습니다. 김훤주가 쓴 이같은 류의 문화현실, 문화현상, 문화비평, 사회비평 기사를 최고급으로 여겨,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 시인 이문재, 후배 노순동 등과 함께 열나게 썼습니다.

  열심히 썼고, 잘 썼고, 그 의미가 적지 않았다고 자부했습니다. 김훤주가 지적한 대중의 광기가 도마(분석대상)에 오른 것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 하던 김훤주는, 과거 학생운동 하던 김훤주처럼, 고급 문화 기사를 썼다고 자부하던 제 앞에, 이제는 대단한 문화 기자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대학원에 가겠다고 책만 들여다보던 제 앞에서 '보들레르 시의 단수, 복수'를 질문거리로 짚어내던 바로 그때의 그 모습처럼 말입니다.

   김훤주는 지금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데스크입니다.

   김주환, 김훤주의 기사를 열독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사회가 바로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