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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나도 논문 없이 대학 졸업했는데……


  타블로에 대해 쓴 글은 격렬한 반발 혹은 호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같은 무명씨의 짧은 글에 대해서까지 얼마나 강력하게 반박들을 해대는지, 그 열과 성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타블로에 대한 것은 지난 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문득 나 또한 논문없이 대학을 졸업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겠으나. 한 인생의 개인사를 놓고 보면 나의 대학 졸업장은 타블로 인생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을 수 있습니다. 나의 졸업장은 내가 한국 사회에서 취직하여 먹고 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타블로의 졸업장은 그의 직업에 필요 조건이 아니었으나,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그 졸업장을 가지고 대학원에 들어갔고, 나중에 회사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할 때 필수적으로 써야 할 것으로 알고 있는 학사 논문을 쓰지 않았습니다. 논문을 쓰지 않았으니, 논문 번호고 뭐고 있을 턱이 없습니다.

  학사 논문을 쓰지 않은 까닭은, 우리 과 고유의 방침 때문이었습니다. 4학년 마지막에 몰려 그냥 졸업을 위해 통과의례로 논문을 쓰고 봐주는 것을 우리 과 선생님들은 별로 탐탁찮게 여기셨습니다. 하여, 이리 저리 짜깁기 하고 베끼고 한 것을,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모두 통과시키는 것이 관례화했다면 별 의미없는 데 시간을 보내게 하느니, 논문에 대해 하나라도 제대로 가르치자는 방침을 정했던 것으로 압니다.

  대학 3학년 1학기에 '논문작성법'이라는 전공 필수 과목이 개설되었습니다.  이 과목을 듣지 않으면 우리 과를 졸업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강의 시간에는 논문을 쓰는 법에 대해 한 학기 내내 배우고, 마지막에는 주제를 각자 정하여 논문 형식의 리포트를 한 편 제출하는 것으로 시험을 대체했습니다. 이 리포트를 인쇄한 바 없고, 학사 논문으로 제출한 바도 없으니, 나는 논문없이 대학을 졸업한 것입니다. 

  만일 내가 입사할 때, 한국의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외에 학사논문 번호를 가져오라 했다면 나는 꼼짝없이 거짓말쟁이로 몰릴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 저러하여 우리는 논문을 쓰지 않고 졸업했다고 하는데도,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이 졸업논문을 쓰고, 너희 대학의 다른 과는 다 쓰는데 왜 유독 너희 과만 쓰지 않는다고 우기는 거냐? 논문 기록 가져오지 않으면 네 졸업장이고 성적 증명서고 다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참 원통하고 괴로웠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