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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문학

시인이 되어 나타난 중3짜리 펜팔 소녀



(토론토=성우제) 3개월 전쯤 한국으로부터 이곳 토론토로 책 2권이 도착했습니다.  아래의 책들입니다.




  이 먼 곳에까지 책을 보내준 이는 필자인 정지원입니다. 그림에 관한 책과 장편동화를 동시에 출간했다고 합니다. 필자는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와 같은 시집을 펴냈으나, 시집 속에 실린 시 한편으로 더 유명해진 시인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시에 가수 안치환이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지요.

  정지원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대학 3학년 때인 1984년이니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시 정지원은 중3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때 1년여 만들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져온 것입니다. 

  나이가 스물, 서른을 넘기면 7년 차이가 별것 아니지만 대학 3학년과 중학교 3학년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대학생과 중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만남을 갖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지원과 '교류'를 했습니다.

  당시 나는 성당 주일학교에서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학생운동의 주변을 빌빌 돌던 차에 주변인으로서의 외로움 혹은 울분 같은 것을 달랠 수 있던 곳이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서울대교구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연합회에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뽑혀갔고, 1983년 서울대교구 중고등부 주일학교 주보인 '하늘마음' 창간과 편집 작업에 참여했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명동성당 사도회관 2층에 모여 초대 편집장 이민자 세레나, 이동원 율리아나, 안진원 방지거, 권병옥 갈리스도와 함께 주보를 편집했습니다. 1985년에는 내가 편집장을 맡았고 1986년까지 편집에 관여했으니, 꼬박 4년을 하늘마음과 함께 보냈습니다.

  1984년 당시 내가 맡은 일은 학생들의 투고를 선별하여 게재하는 것이었는데, 어느 중학생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한 번 싣고, 두 번 싣고 하다보니 이름이 기억되었고, 자주 실리다 보니 그 학생은 자주 글을 보내왔습니다. 서울대교구에 속해 있던 의정부4동 성당에 다니던 여학생이었습니다.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문장이 정확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내용은 구체적이고 진솔하고, 또 눈물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글이 게재된 학생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글 참 잘 쓰는구나. 계속 열심히 쓰거라'라는 짤막한 메모를 보낸 기억이 납니다.

1984년 주보 편집부에서 글이 게재된 학생들에게 이 기념품을 보내주었습니다. 뒤에는 JESUS가 적혀 있습니다. 나에게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이 메모를 시작으로 정지원과의 펜팔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같은 방을 쓰는 우리 형 표현을 빌리자면 '하고 한날 책상에 앉아 편지만 쓰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딱히 나에게 맞는 글의 장르를 찾지 못한 터여서 지금 생각하면 편지글이 나에게는 창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편지글도 문학의 한 장르가 된다는 것은 훨씬 뒤에야 알았습니다.

  정지원과도 편지 수십통을 주고 받았습니다. 하늘마음 100호 기념 특집호를 낼 때, 정지원을 서울로 불러올려 편집실 풍경을 적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처음 만났고, 우리 대학에 한번 불러 밥을 사준 기억이 납니다. 그야말로 어린 여학생이었습니다.

  조금 바빠지기 시작한 대학 4학년 때 소식이 끊긴 후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1990년대 중반 안치환의 노래에서  작사 '정지원'이라는 이름을 보고, 그 아이임을 직감했습니다.

  민가협이라는 단체에서 주최하는 시민가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유명 PD들과 대중음악 평론가들 사이에 끼여 있는데, 어느 젊은 여성이 꽃다발을 들고 심사위원석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당연히 주철환 같은 스타 PD에게 오는 꽃인 줄 알았습니다. 그 꽃은 뜻밖에도 내 앞에 놓였습니다. 젊은 여성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지원이에요, 정지원..."

  그날 심사위원들에게는 심사료로 중국집에서 짜장면이 제공되었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꽃보다 꽃을 든 여성에게 더 관심을 쏟았습니다. 왜 안그렇겠습니까? 그냥 평범한 사람인 나에게 꽃을 들고 왔으니...

  정지원은 신문에 실린 가요제 광고에서 내 이름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관계냐?"며 주철환 PD가 집요하게 캐물었습니다. 정지원은 말했습니다. 내가 보낸 편지가 '생명수'와 같았다고... 나는 무슨 내용을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데, 나의 편지가 어려운 시기의 정지원에게 삶의 위로이자 희망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연을 전해들은 주철환씨는 다음날 라디오에서 아름답게 포장하여 방송했다고 하는데, 나는 방송을 들었다는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었습니다.

  이민을 오고 난 뒤에도 정지원은 가끔씩 안부를 묻는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안치환과 함께 작업한 음반에 이어 이번에는 책을 두 권 보내왔습니다. 한 권은 그림읽기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평강공주를 소재로 쓴 장편동화입니다.

  앞의 것은 미술이나 그림을 어려워 하는 이들이 읽기에 알맞은 그림에 관한 책입니다. 정지원은 시인의 눈으로 화가의 마음을 침투해 들어갑니다. 정지원은 그림에 나타난 예술가의 마음의 풍경과 상처를 쉽게 아름답게 풀어냈습니다. 평강공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정지원의 책을 통해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사람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한때나마 나의 편지가 누구에게 삶의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는 사실이, 팍팍한 40대의 삶을 사는 현재의 나에게 위로와 희망이 됩니다.